무당거미의 이치

(1996)


지은이: 교고쿠 나쓰히코

옮긴이: 김소연

출판사: 손안의책 (2014년)



솔직히 말해 책이 그리 두껍지도 않고, 전작 <철서의 우리>처럼 책끈이 달려 있는 것도 아닌데 세 권으로 나왔다는 것에 조금 씁쓸함을 느꼈다. 충분히 두 권으로 나와도 될 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상중하 각 권마다 표지그림이 조금씩 달라 신경썼구나 하는 것으로 억지로 위안삼았다.

그런데 상권의 3분의 1쯤 읽다가 뭔가 떠올라 확인해보니, 모든 문장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서 이어지는 일 없이 전부 그 페이지 안에서 끝나게 되어 있었다.

실제로 일본에선 나쓰히코 본인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문장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게 직접 각 페이지를 다 레이아웃 잡아서 출판사로 넘긴다는 얘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역시 번역판에서는 무리겠지하고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출판사에서 이렇게나 신경을 써준 것을 확인하니 세 권으로 나온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상술이라고 속으로 비난했던 것이 미안하다.


그런데 사실 첫 장부터 페이지 넘기기가 너무 힘들었다.

특유의 지루하고 장황한 설명, 왠지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는(꼭 그렇진 않았지만) 주변 이야기들을 길게 서술하느라 내용이 지루하여 읽기 힘들었다.

상권의 끝부분에 가서야 재미가 있어지고, 시리즈의 고정인물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면서 속도가 빨라질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재미있게 술술 읽혔지만 몇 가지 각각 다른 사건들이 하나로 이어지면서, 역시 앞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단점이...

이 작품에서 몇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 보여지는데, 예를 들어 첫 부분과 끝부분이 이어지는 것 등이 그렇다.

<철서의 우리>와 같은 시기의 내용이라는 설정은 시리즈가 정착되고 캐릭터들이 많아지면서 생긴 작가의 여유라고 느껴진다. 부럽다.


나쓰히코의 또 하나의 장기는 눈 감아버리고 싶은 싫은 인물, 싫은 상황의 묘사를 내 감정 따윈 개의치 않고 풀어나간다는 것이다(당연하지). 뭐, 다행히도 잘 끝났지만.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느껴왔지만, 이 작품을 읽고 새삼 느낀 것은 나쓰히코의 글에는 허세가 가득하다는 것이다. 조금씩만 자제하면 더욱 대중적이고 깔끔히 정리될 것 같은 부분들이 많은데, 문체가 다소 이상해도 이야기의 힘으로 그 부분을 극복해가는 것이 대단하다.

특정 요괴에 관련지어 요괴가 직접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연상시키는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점은 정말 존경스럽다.  


그나저나 나쓰히코 작품들의 번역 출간속도는 너무 느린데, 빨리 다음 시리즈도 보고 싶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기다려진다.

여담이지만 김소연 번역가는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상당히 많이 작업하셨는데(주로 손안의책 출판사),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 중에 <피리술사>만을 작업하지 않은 걸 보니 이 작품이랑 시기가 겹쳐서 이쪽만 하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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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닛코